바텐더를 하는 이유?

전 교사라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바텐더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교사를 뒤로 하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가르쳐야만 하는 입장보다는 배우고 보고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인 입장과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더 넓은 터로 나오기 위함과 학업을 계속 하기엔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다는 현실적인 부분까지, 모든 것이 딱 들어맞아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드를 전전하다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있는 동안 끊임 없이 생각했습니다.

저의 꿈은 소설가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소설을 쓰는 것이고, 조금 더 세밀하게는 제가 바라는 완벽한 소설을 쓰는 게 제 꿈입니다.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삶의 본질을. 물론 이런 말을 하는 게 건방질 정도로 많은 걸 모르고 있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전 지금 제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인생의 진리를, 진리이기에 그 길로 가려합니다. 정반합. 이상과 현실은 정과 반의 관계이면서 합의 관계입니다. 전 현실에 속해있으면서 이상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또한 그 사실을 알기에 현실을 직시하려 합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걸 정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때문에 전 음악감각이 없어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고 현실감각이 없어서 돈을 벌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마치 배고프니까 아무거나 먹고, 성욕에 굶주렸으니까 아무나하고 자고, 돈이 없으니까 아무 돈이나 가져오고, 이런 꼴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고파서 무언가를 먹더라도 더 필요한 것, 좋은 것, 혹은 싫은 것을 억지로 먹는 게 더 나은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전 바텐더 일을 합니다.

요렇게 조그마한, 마차 10평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공간 안에서 무얼 배울 수 있겠느냐 싶겠지만, 여긴 정말 어마어마 합니다. 초라한 제 자신이 더욱 더 초라해져 보일 정도로요. 바텐더라는 만화책은 많이 미화되었고 비약적이지만, 꼭 그렇게 틀린 말만은 아닙니다. (그게 기준이 된다면 무시무시하겠지만요.) 이 조그마한 바라는 공간에서 전 사회를 보고 있고 세계를 보고 있고 우주를 보려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전 바텐더 일로 돈을 벌지만 더 큰 것들을 벌어가고 있고, 더 큰 것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소설을 쓰려 하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흔히 남에게 주는 것은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라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봅니다. 저 역시 어린시절을 영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돈이 철철 넘쳐서 시간이 넘쳐서 그렇게 저를, 혹은 제 또래의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도와줬을까요. 제가 저의 바에 오는 손님들께 돈을 주고 시간을 줄 순 없지만, 다른 무언가를 줄 수는 있다고 생각힙니다. 또한, 부족하기에, 그리 하려 하고요.

그게 제가 선택한 삶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정반합. 주는 것과 받는 것은 정과 반의 관계이지만 합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주는 입장입니다. 라고 전 여겼지만, 이제와서 동기들을 보며 느끼건데, 그건 제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 역시 배웁니다. 어쩌면, 모든 직업이 주고 받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승화시키느냐가 다르겠지요.

전 바텐더라는 직업을 통해 끝장나게 승화시켜보려 합니다. 사람들의 온갖 감정을 취할 것이고, 온갖 감정을 줄겁니다. 더 나아가 그런 소설을 쓸 것이고, 사람들에게 읽힐 겁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by 이재훈 | 2008/05/17 20:39 | 술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0)

이외수, 『들개』, 해냄

젓가락을 벽에 던져서 박으시고, 한겨울에 폭포수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이젠 너무 많이 퍼져서 신기하지 않다. 단순히 괴인이라고 칭하기에는 이외수의 행동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또한 그의 소설 들개를 보게 된다면, 이건 더이상 우스갯 소리가 아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이외수의 예화를 들었었고, 나 또한 비슷하게나마, 혹은 작게나마 고민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었기에 순수한 마음에서 이외수를 인정했다. 솔직하게 글을 쓰고 싶었다. 아무리 가타부타 많은 설정들과 이야기와 감정들이 오고간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 자신이 모든 것을 '경험' 하고만 싶었다. 그래야만 진정한 글이 나오리라고. (그래서 이걸 주제로 글을 써보기도 했었다, 후후.) 그런 와중에 들은 이외수의 이야기는, 내게 힘을 줬다. 아, 그래 난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동지의식?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내가 이외수를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가 이외수를 '처음'으로 보게 된 건, 왜 일까, 왜 이제와서, 굳이, 아무튼,

들개를 읽고, 난 다시금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외수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들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개가 되고야마는, 주인공, 그리고 이외수, 조금 염치 없이 말하자면 나까지, 그게 진실된 글쓰기의 방식 중 하나임을 설파하려 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현실의 노예에 불과한 여주인공은, 글을 쓸 수 없다. 앞으로도.

많은 비약이겠지만, 적극 긍정하게 된다. 삶의 방식 또한 긍정한다. 하나를 이루기 위해선, 내 자신이 그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가 되는 척만 해서는, 그저그런, 집을 지키는 개가 될 뿐이다. 

by 이재훈 | 2008/05/13 15:14 | 책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5월 5일 양천 마라톤 대회

어제, 양천구청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하프 뛰었다간 죽을 것 같아서 얌점하게 10km로 도전했는데, 그 마저도 버거워서 죽을 뻔 했다. (...)
공식기록은 58분 26초
친구가 걸었냐고(...) 무안 줬지만, 난 나름 만족하는 기록.


골을 얼마 안 놔두고 주저앉을뻔 했다.
그런 것 같다,
골이 보이지 않아 주저 앉지만, 막상 골은 가까이에 있다. 그 잠깜만 넘어서면 바로 앞에 골이 있는데.
주저앉고 싶을때가, 골이 멀지 않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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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 2008/05/06 16:36 | 그외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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